2012년 01월 14일
물질, 정신, 본질
인간은 크게 세 가지 관점으로 볼 수 있다. 강금실 전 장관의 강의에서는 몸, 마음, 정신이라는 세 가지 측면으로 인간을 설명했지만, 여기에는 다소 명확하지 않은 점이 있다. 바로 마음의 측면이다. 마음은 일종의 감정상태로, 호르몬 작용에 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마음, 즉 감정 내지는 감성도 몸의 일부분인데, 엄밀히 따지면 강금실 전 장관의 구분은 세 가지가 아닌 것이다. 그리고 정신이라는 측면도 영성이라고 하기에는 그 범위가 매우 넓다. 그래서 나는 인간을 다시 구분하고자 한다. 물질, 정신, 본질이 바로 그것이다.
물질은 말 그대로 인간에게 속한 모든 물질을 말한다. 물리학이나 생물학으로 탐구할 수 있고, 과학적인 증명도 가능하다. 여기에는 감정 내지는 감성도 속한다. 현대 의학으로는 간단한 약물로도 인간의 감정상태를 조절할 수 있으며, 우리가 흔히 느끼는 영적인 상태도 실은 호르몬 작용의 일종인 경우가 많다. 강금실 전 장관의 구분에 의하면, 몸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인간 개개인의 나이는 100년을 넘어가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인간 몸을 이루는 입자 하나하나의 나이는 수 십 억년, 혹은 우주의 나이와 비교된다.
정신이란 단어가 포함하는 의미는 광대하지만, 여기에서 쓰는 정신은 이성의 영역에 한정짓는다. 대표적으로는 사람의 이름이 여기에 속한다. 이름에는 그 사람의 기본정보가 담겨있다. 성을 보면 그 사람의 가문을 알 수 있고, 이름 속에는 그 사람의 가치관이나 삶이 담겨 있다. 그뿐 아니라, 그 사람이 쓰는 언어, 기억도 정신의 측면에 포함된다. 시각적 이미지로 담길 수 있다는 점을 본다면 정신이 미디어의 역할을 한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이처럼 정신은 물질과 본질을 이어주는 다리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본질은 영혼이다. 융의 입장에서 보자면, 집단적 무의식, 원형, 심혼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나는 좀 더 기독교적인 표현인 영혼이 낫다고 생각한다. 존재 그 자체를 뜻하는 본질은 영성과 깊이 관계한다. 강금실 전 장관은 넓은 의미의 정신에서 영성을 보았지만, 본질은 정신이 아니다. 이는 과학으로도, 정신분석으로도 알 수 없는 또 다른 영역이다. 개별자를 개별자가 되게 만드는 바로 그것이다.
이를 기독교의 삼위일체에 비유하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기독교의 중심 교리이다. 여기서 성부 하나님은 본질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야훼의 뜻, ‘스스로 있는 자’는 존재의 측면을 잘 나타내고 있다. 성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는 정신이다. 요한복음 서두의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에서도 텍스트의 역할, 즉 미디어의 역할을 하는 예수를 잘 보여준다. 하나님에게 있어 물질은 성령이다. 성령은 성부 하나님의 손과 발의 역할을 한다. 병을 치유하고 기적을 행하는 것도 성령이다. 물질세계에 직접 관여하고, 그것을 변화시키는 것도 성령이다.
융은 삼위와 사위를 나누고 삼위는 의식을 나타내며, 사위는 무의식을 포함한 전체성을 나타낸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사위에서 무의식은 또 다른 삼위를 형성한다고 설명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에서 인간의 몸을 입은 예수 그리스도는 또 다른 삼위를 형성한다. 성경에 보면 예수에 대한 세 가지 표현이 나오는데, 바로 예수의 생명, 예수의 이름, 예수의 보혈이다. 이 세 가지는 본질, 정신, 물질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 사람은 구원을 받게 된다. 다시 한번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의 역할, 미디어의 역할을 드러내는 것이다.
사람도 이렇게 삼위일체가 된다. 물질과 정신은 이미 우리시대에 많이 연구되었고, 종교도 이 영역 안에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본질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인간은 개별자이자, 본질적 존재이다. 네트워크는 정신의 영역이지, 본질은 아니다. 경쟁은 물질의 영역에 속한다. 사이코패스는 물질적 영역에서 가장 진화한 인간이다.
결국 신은 필요하다고 본다. 융이 말한, 원형의 상징이나 표상으로서의 신이 아니라, 인격적 신, 개별자인 나를 증명해 줄 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키르케고르의 외톨이는 중요하다. 신 앞에 선 단독자. 이것이 바로 나이자, 본질이다.
물질은 말 그대로 인간에게 속한 모든 물질을 말한다. 물리학이나 생물학으로 탐구할 수 있고, 과학적인 증명도 가능하다. 여기에는 감정 내지는 감성도 속한다. 현대 의학으로는 간단한 약물로도 인간의 감정상태를 조절할 수 있으며, 우리가 흔히 느끼는 영적인 상태도 실은 호르몬 작용의 일종인 경우가 많다. 강금실 전 장관의 구분에 의하면, 몸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인간 개개인의 나이는 100년을 넘어가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인간 몸을 이루는 입자 하나하나의 나이는 수 십 억년, 혹은 우주의 나이와 비교된다.
정신이란 단어가 포함하는 의미는 광대하지만, 여기에서 쓰는 정신은 이성의 영역에 한정짓는다. 대표적으로는 사람의 이름이 여기에 속한다. 이름에는 그 사람의 기본정보가 담겨있다. 성을 보면 그 사람의 가문을 알 수 있고, 이름 속에는 그 사람의 가치관이나 삶이 담겨 있다. 그뿐 아니라, 그 사람이 쓰는 언어, 기억도 정신의 측면에 포함된다. 시각적 이미지로 담길 수 있다는 점을 본다면 정신이 미디어의 역할을 한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이처럼 정신은 물질과 본질을 이어주는 다리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본질은 영혼이다. 융의 입장에서 보자면, 집단적 무의식, 원형, 심혼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나는 좀 더 기독교적인 표현인 영혼이 낫다고 생각한다. 존재 그 자체를 뜻하는 본질은 영성과 깊이 관계한다. 강금실 전 장관은 넓은 의미의 정신에서 영성을 보았지만, 본질은 정신이 아니다. 이는 과학으로도, 정신분석으로도 알 수 없는 또 다른 영역이다. 개별자를 개별자가 되게 만드는 바로 그것이다.
이를 기독교의 삼위일체에 비유하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기독교의 중심 교리이다. 여기서 성부 하나님은 본질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야훼의 뜻, ‘스스로 있는 자’는 존재의 측면을 잘 나타내고 있다. 성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는 정신이다. 요한복음 서두의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에서도 텍스트의 역할, 즉 미디어의 역할을 하는 예수를 잘 보여준다. 하나님에게 있어 물질은 성령이다. 성령은 성부 하나님의 손과 발의 역할을 한다. 병을 치유하고 기적을 행하는 것도 성령이다. 물질세계에 직접 관여하고, 그것을 변화시키는 것도 성령이다.
융은 삼위와 사위를 나누고 삼위는 의식을 나타내며, 사위는 무의식을 포함한 전체성을 나타낸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사위에서 무의식은 또 다른 삼위를 형성한다고 설명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에서 인간의 몸을 입은 예수 그리스도는 또 다른 삼위를 형성한다. 성경에 보면 예수에 대한 세 가지 표현이 나오는데, 바로 예수의 생명, 예수의 이름, 예수의 보혈이다. 이 세 가지는 본질, 정신, 물질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 사람은 구원을 받게 된다. 다시 한번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의 역할, 미디어의 역할을 드러내는 것이다.
사람도 이렇게 삼위일체가 된다. 물질과 정신은 이미 우리시대에 많이 연구되었고, 종교도 이 영역 안에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본질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인간은 개별자이자, 본질적 존재이다. 네트워크는 정신의 영역이지, 본질은 아니다. 경쟁은 물질의 영역에 속한다. 사이코패스는 물질적 영역에서 가장 진화한 인간이다.
결국 신은 필요하다고 본다. 융이 말한, 원형의 상징이나 표상으로서의 신이 아니라, 인격적 신, 개별자인 나를 증명해 줄 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키르케고르의 외톨이는 중요하다. 신 앞에 선 단독자. 이것이 바로 나이자, 본질이다.
# by | 2012/01/14 03:41 | 글쓰기 | 트랙백 | 덧글(0)



